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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버가 만드는 습지로 생물다양성이 19% 늘어난다

앨지닥터(김덕원)
2026-03-30
조회수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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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Ecology 에 게재 예정인 스털링대학교·헬싱키대학교 공동 연구에 따르면, 비버가 만든 습지는 같은 경관 안에 비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습지와 비교했을 때 지역 전체의 생물 분류군 풀(pool)을 평균 19% 확장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종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넘어, 비버 습지의 식물 기능적 다양성은 대조 습지보다 55% 높았다. 이는 비버 습지가 더 넓은 범위의 생태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 비버는 어떻게 습지를 만드는가

비버(생태계 엔지니어, ecosystem engineer)는 하천을 나뭇가지와 진흙으로 막아 댐을 건설하고, 주변 저지대 숲을 침수시켜 얕은 습지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수목을 선택적으로 벌목하고, 수로를 굴착하며, 댐을 주기적으로 보수한다. 그 결과 단일한 수변 환경이 아니라 수심·식생·빛 조건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서식지 모자이크(Habitat Mosaic)가 형성된다. 비버는 한 장소에 평균 3년 정도 머물다가 이동하는데, 버려진 습지는 건조해지다가 다시 점령되어 습지가 되는 주기를 반복한다. 이 '교란과 재정착'의 순환이 경관을 한 가지 모습으로 굳지 않고, 늘 다양한 상태가 뒤섞여 있게 한다. 

전 세계 담수 생물다양성이 육상·해양 생태계의 약 두 배 속도로 감소하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19세기 초까지 사냥으로 거의 절멸했던 비버가 법적 보호와 재도입 사업 덕분에 현재 약 28개국에서 회복 중이며, 비버의 현재 서식 범위는 과거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 연구는 비버 개체군 회복이 생물다양성에 어떤 규모의 혜택을 가져오는지를 여러 생물 분류군에 걸쳐 동시에 검증한 첫 번째 종합 연구 중 하나다.


| 핀란드 에보에서 진행된 다분류군 비교 실험

연구팀은 2022년 8월, 핀란드 남부 에보(Evo) 집수역(약 39㎢)에서 비버가 만든 '비버 습지' 9곳과 비버의 영향을 받지 않은 '대조 습지' 9곳을 조사했다. 두 유형의 습지는 같은 경관과 배수유역 안에 위치해 규모와 수질이 유사했다.

조사에는 두 가지 방법이 병행됐다. 수생식물과 물딱정벌레는 현장 표본 조사(in-situ survey)로,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은 환경 DNA(eDNA, environmental DNA) 메타바코딩 기법으로 탐지했다. eDNA란 물속에 떠다니는 생물의 세포 찌꺼기나 분비물에서 유전정보를 추출하는 방법으로, 직접 포획하기 어려운 어류·조류·포유류 같은 이동성이 높은 종까지 파악할 수 있다. 총 10개 분류군, 380개 분류단위(taxa)를 분석했다.


| 비버 습지가 경관 전체의 종 목록을 19% 늘린다

18개 습지 전체를 통틀어 총 380종(분류단위)이 확인됐다. 이 중 비버 습지에서는 316종, 대조 습지에서는 274종이 발견됐는데, 비버 습지에만 사는 고유한 종의 비율이 분류군 평균 19%에 달했다. 식물, 딱정벌레류, 파리목, 하루살이·강도래·날도래류에서 이 효과가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 비버 습지는 개별 서식지로서 특출난 것이 아니라, 경관 전체의 종 목록을 채워 주는 '보완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작은 구역을 개별적으로 나눴을 때의 종 풍부도는 두 습지 유형이 비슷했다. 즉 비버 습지에서 생물다양성 혜택은 작은 공간에서 바로 눈에 띄기보다, 비버 습지 안에는 수심이 깊은 곳, 얕은 곳, 쓰러진 나무가 있는 곳, 수위 변동이 잦은 가장자리 등 환경이 서로 다른 구역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구역마다 사는 종이 달라지고, 이 다양한 구역들을 합산했을 때 비로소 경관 전체의 종 목록이 대조 습지보다 풍부해지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 왜 비버 습지에는 더 많은 생물이 사는가

대조 습지와 비버 습지의 수질 차이는 미미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물의 성분이 아니라 물리적 구조였다. 에보의 대조 습지는 빙하 침식으로 형성된 케틀호(glacial kettle hole lake) 형태로, 가장자리가 급경사를 이루고 수심이 1m를 빠르게 넘어선다. 수변 식생이 자랄 수 있는 얕은 공간이 협소해 서식지 유형이 단조롭다.

반면 비버 습지는 수심이 평균 23cm로 대조 습지(평균 64cm)보다 훨씬 얕고, 가장자리가 복잡하게 구부러진다. 댐 건설로 수위가 주기적으로 오르내리고, 벌목된 나무와 굵고 가는 고사목이 물속과 수변에 흩어져 있다. 선택적 초식과 굴착으로 뽑히거나 뒤집힌 토양에서는 오랫동안 잠자던 종자은행(seed bank)이 깨어나 새로운 식물이 정착한다.

이 '서식지 모자이크(Habitat Mosaic)'는 세 가지 경로로 새로운 종을 불러들이는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첫째, 수위 변동과 벌목이 만들어 내는 교란은 경쟁력이 강한 우점종의 독점을 막고, 그 틈새에서 경쟁력이 약하지만 독자적인 생태적 역할을 하는 종들이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공간을 확보한다. 둘째, 범람과 재범람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토양 속 종자와 영양번식체가 활성화되어 다양한 식물이 동시에 발아한다. 셋째, 경관 안에 수면 면적이 늘어나면 물새가 더 자주 들르고, 물새는 발과 깃털에 씨앗을 묻혀 새로운 식물종의 산포자 역할을 한다. 

실제로 대조 습지의 딱정벌레류는 주로 수변 얕은 가장자리에 집중됐지만, 비버 습지에서는 습지 전체에 걸쳐 고르게 분포했다. 비버 습지에서만 나타난 식물들은 수위 변동이 잦은 환경이나 높은 영양 조건에 적응한 종들이었고, 딱정벌레류는 얕고 식생이 풍부한 수체를 선호하는 종들이 지표종으로 확인됐다. 이는 비버 활동이 만들어 내는 물리적 조건 자체가 특정 생물군의 서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 식물 기능적 다양성이 55% 높다

비버 습지 식물이 종 수뿐 아니라 생태적 역할의 다양성 면에서도 뚜렷이 달랐다. 기능적 다양성(functional diversity)이란 종의 수가 아니라 그 종들이 수행하는 생태적 기능의 범위를 측정한 지표다. 연구팀은 빛, 수분, 질소(생산성), 토양 산도에 대한 식물의 선호도를 바탕으로 기능적 풍부도·균등도·분산도를 산출했다.

비버 습지는 세 지표 모두 대조 습지보다 높았으며, 기능적 풍부도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비버 습지의 식물은 더 그늘지고, 더 습하고, 더 영양이 풍부한 조건을 선호하는 종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는 비버 활동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미소서식지를 반영한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비버 습지가 경관의 종 다양성뿐 아니라 생태계 기능적 회복력(functional resilience)을 높인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 비버 습지의 척추동물

eDNA 분석에서는 대조 습지와 비교해 비버 습지에서 강꼬치고기(Esox lucius)가 검출된 샘플 비율이 84% 대 43%, 오리류(Anatidae)는 78% 대 48%로 높게 나타났다. 비버 습지의 얕고 식생이 풍부한 수변은 천적을 피하고 먹이를 구해야 하는 치어기 강꼬치고기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오리류에게는 풍부한 먹이터가 되는 것으로 연구팀은 해석했다. 통계적 유의미성은 확보되지 않았으나, 이 경향은 기존 연구들과 일관된다.


| 의의, 한계,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

이번 연구는 비버 한 종이 단일 경관 안에서 여러 분류군의 생물다양성과 생태 기능을 동시에 개선한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보여 준다. 비버의 개체군이 과거의 10% 수준에 불과한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연구팀은 과거 비버 감소와 함께 사라진 생물다양성의 규모와 앞으로 회복될 수 있는 정도가 이번 연구 결과보다 훨씬 클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연구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조사가 단일 시기(8월)에 한정되어, 이른 봄에 번식하고 늦여름에 분산하는 물새류 등 계절성이 강한 종은 과소 추정됐을 가능성이 있다. 파리목, 조류, 포유류의 종 축적 곡선은 표본 포화점에 도달하지 못해 실제 종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연구 대상지인 에보는 비교적 인간의 영향이 적은 적은 북방 삼림 경관으로, 농경지나 도시 근교에서의 결과와 다를 수 있다. 후속 연구로는 계절별 반복 조사, 다양한 토지 피복 유형에서의 검증, 그리고 비버 습지가 수행하는 영양 순환·탄소 저장 등 기능적 과정의 정량화가 필요하다.

비버 재도입과 자연 기반 습지 복원에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번 연구는 비버가 단순한 포식자·피식자 관계를 넘어 경관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자연의 토목 기사임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 참고문헌

Law, A., Willby, N., Spencer, T., Bryan, D., Foster, G. N., Handley, L. L., Liao, W., Sellers, G. S., & Nummi, P. (2026). Wetland landscape transformation by beavers: responses of biodiversity and functional indicators at multiple scales. Landscape Ecology. https://doi.org/10.1007/s10980-026-02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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